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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囊中之錐)의 뜻과 유래

by idiom.dictionary 2023. 6. 24.

주머니 안에 송곳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날카로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겁니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안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인 낭중지추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머니 (낭) 안,속 (중) 어조사 (지) 송곳 (추)

낭중지추가 인용된 뉴스로 쓰임 알아보기

 

낭중지추-囊中之錐-뜻과유래

 

낭중지추의 유래

낭중지추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사로 알려진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과 평원군의 식객(食客)이었던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나눈 얘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식객은 예전에 세력 있는 대갓집에 얹혀 지내던 사람을 얘기하는데 그중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도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나중에 큰 인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식객은 대갓집의 인력풀이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침략하여 수도를 포위하자 위기를 느낀 왕은 평원군에게 초(楚)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으라는 지시를 합니다. 이에 평원군은 문하의 사람들 중 문무를 갖춘 뛰어난 능력을 가진 20명을 모아 함께 가려고 했는데, 19명을 정하고 마지막 한 명을 두고 고민하였습니다.

 

이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추천하자 평원군이 모수에게 묻습니다. "우리 집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는가?" 모수가 3년이라고 답하자 평원군은 "현명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송곳이 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드러난다네. 그런데 나는 선생에 대해 들은 바가 없으니 이는 선생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요."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모수는 말하길 "나는 이제야 주머니에 들어가길 청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면 끝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루까지 보였을 것입니다"라면 자신은 아직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합니다. 이에  평원군은 모수를 함께 데려가기로 했으나 다른 이들은 모두 모수를 비웃었다고 합니다.

 

이 일의 결말은 눈치채셨겠지만 모수는 홀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초나라 왕을 설득하고 동맹을 맺고 돌아옵니다.

낭중지추의 뜻

 

낭중지추를 직역하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 빼어난 사람은 가려져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의미를 뜻합니다.

 

 

낭중지추와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

군계일학(群鷄一鶴)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의미함.

백미(白眉)
'중국 촉(蜀)나라 마량(馬良)의 5형제 중 흰 눈썹이 섞인 양(良)의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의미함.

낭중지추 유래와 관련된 고사성어
모수자천(毛遂自薦)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뜻으로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움을 빗대어하는 말임.
본래 모수자천은 어려운 일을 당해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뜻이 변질되어 일의 앞뒤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긍정적 의미가 부정적 의미로 바뀐 셈이다.

낭중지추가 유래된 책의 원문 구절

 

출전(出典)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秦之圍邯鄲 趙使平原君求救 合從於楚

約與食客門下有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偕

 

平原君曰 使文能取勝 則善矣

文不能取勝 則歃血於華屋之下 必得定從而還

士不外索 取於食客門下足矣

 

得十九人 餘無可取者 無以滿二十人

門下有毛遂者 前 自贊於平原君曰

遂聞君將合從於楚 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 不外索

今少一人 願君即以遂備員而行矣

 

平原君曰 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

毛遂曰 三年於此矣

 

平原君曰 夫賢士之處世也 譬若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

先生不能 先生留

 

毛遂曰 臣乃今日請處囊中耳

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平原君竟與毛遂偕 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

 

 

낭중지추가 유래된 책 소개

사기(史記)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 시대의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역사서로, 중국 역대 대표 역사서 24사 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역사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기(史記)는 역사적 사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편년체'가 아닌, 각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기술하는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된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또한 사기는 역사서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뛰어난 문장으로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 상고 시대의 황제 오제부터 한무제까지 제왕의 역사를 기록한 12본기(本紀),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10표(表), 예법, 음악, 병법과 군사, 역법, 천문, 종묘나 제사, 치수, 경제를 기록한 8서(書), 춘추전국시대의 유명 제후들과 전한의 황족, 제후들과 고관들을 기록한 30세가(世家), 천하에 공명을 떨친 인물들에 대해 기록한 70열전(列傳) 등 모두 130편 526,500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은 자신의 저서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지금의 사기(史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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